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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나만의 일상

새로운 집에서 자가 격리 2주

by 정이모음 202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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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2021년 7월 9일 저녁 8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집에 오자마자 바로 자가 격리가 시작되었다.

내가 해외에 있을 때 어머니가 급하게 얻어 준 새 집이기 때문에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대충 내가 원하는 큰 가구들을 주문했고,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내가 이 집에 오자마자 불편함이 없도록 엄마가 정리를 다 해주셨다.

하지만 짐 정리는 오롯이 내 몫이었기에 격리기간 동안 심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

지금은 다행히도 코로나도 음성이고 7월 23일 낮 12시 이후 격리 해제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자가 격리하는 동안의 2주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 첫째 날

2021년 7월 9일 인천 공항에 도착하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오랜만에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바로 인천 공항에서 내가 머물 대구 집까지 차로 4시간 넘게 움직였고, 밤 12시 40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새로 이사한 집이라 엄마는 집의 동선을 간단하게 설명 후 엄마의 집으로 가버렸다.

나는 앞으로 내가 쓸 이 방을 쓱 한번 훑어보았다.

 

가구도 새 거고 침대도 좋고, 주방 조리기구부터 밥솥에 밥도 있고 냉장고도 꽉꽉 차 있었다.

내가 오자마자 불편함이 없도록 한다더니 역시 세상에 엄마가 최고라는 걸 체감했다.

배달 음식은 무슨... 엄마 밥이 최고지!!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간단한 짐만 풀어 씻고 자려고 했다.

샤워하고 머리도 감았는데 다리이기가 없구나!

결국 에어컨 켜고 찬바람 아래에 말리다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 잠들 수 있었다.

 

# 둘째 날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잠이 깼다.

엄마가 해놓은 미역국과 반찬들을 싹 다 꺼내 아침밥을 먹고 나니 담당 공무원이 전화가 왔다.

보건소 직원이 아닌 도시정비(?) 관련 공무원이셨는데 코로나 자가격리 모니터링 공무원은 부서 상관없이 업무를 담당한다고 하셨다.

코로나 관련 일은 워낙 많은데 공무원 인력이 부족한 듯했다.

열이 나는지, 콧물이나 기침은 있는지에 대해 자가 체크를 물어보셨고, 굉장히 친절하게 몇 가지를 당부하셨다.

 

매일 하루에 2번씩 자가 진단 앱에 자가 진단 체크

PCR 검사 진행 외에 밖으로 외출 금지

모든 택배는 비대면으로 받고 외부인 접촉 금지

쓰레기 밖으로 버리지 말고 집에 보관할 것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

 

그리고 위생키트와 긴급구호물품은 주말에 보급이 되지 않아 신청 후 월요일에 보내준다고 하였다.

PCR 검사는 격리 동안 첫날(혹은 다음날) 1번, 격리 마지막 전날 1번 이렇게 총 2번 진행한다고 해서 당일 2시에 검사 예약을 하고 대구 북구 보건소 선별 진료소를 찾았다.

내가 온 시간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뭔가 후루룩 하고 끝나버렸다.

검사 키트는 이전에 대만에서 받은 것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대만은 새끼손가락만 한 면봉 하나로 코를 엄청 찔러서 너무 아팠는데 한국은 리트머스 종이와 얇은 면봉으로 입 안에 한 번, 코 안에 한 번 그냥 찔끔 느낌만 나는 정도로 검사가 끝났다.

 

허무하게 끝나고 엄마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가는데 비가 왔다.

동네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도착해서 본격적으로 이삿짐과 택배 정리로 하루를 보냈다.

 

# 셋째 날

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 메시지를 받았다.

일요일이지만 아침부터 열 일하는 담당 공무원의 감시 겸 위로의 전화를 받은 후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짐 정리!

내가 대만에서 보냈던 짐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 넷째 날

일요일이 끝나지 않은 월요일이었다.

짐 정리는 계속되는 와중에 대구 북구 보건소에서 너무 고맙게도 긴급구호 물품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터넷으로 주문한 드라이기가 도착했다.

이제 더 이상 머리를 에어컨 찬 바람에 안 말려도 되겠군.

이미 많은 것들이 준비되었지만 아무것도 없던 새 집이다 보니 짐 정리를 하면서 격리 둘째 날부터 필요한 것들을 인터넷 쇼핑으로 계속 주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최단기간에 쇼핑몰 VIP가 되었다.

 

# 다섯째 날

위생키트 박스가 드디어 도착했다.

안에는 KF94 마스크 여러 개, 손 소독 젤, 알코올 소독제, 체온계, 폐기물용 쓰레기봉투 20L 하나가 들어 있었다.

2주 동안 쓰레기는 절대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되고 저 쓰레기봉투가 모자라면 일반 쓰레기봉투를 쓰라고 했다.

만약 내가 코로나 양성이면 보건소에서 쓰레기를 모두 수거할 것이고 음성이면 그냥 평범하게 내놓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자가격리 똑바로 하라는 약간의 무서운 경고(?)와 힘들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응원과 위로의 종이들이 많았다.

이것저것 받다 보니 나름 여기저기에서 참 많이 신경 써 주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옷장 정리와 소품 정리가 끝났다.

 

# 여섯째 날~열두째 날

날씨가 더워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선풍기와 체중계가 드디어 도착했다.

집 안에서 숨만 쉬고 있었더니 체중계 위로 올라가기 겁이 났다.

역시나 살이 많이 쪘다.

짐 정리는 덜 끝났지만 계속 살이 찌게 둘 수 없어 스쾃만 하던 맨몸 운동의 강도를 늘리기로 했다.

요가매트를 주문해서 홈트를 하고 오랜만에 땀을 냈지만 쉽게 찌운 살은 쉽게 빠질 생각이 없나 보다.

여러 가지 청소용구와 세제도 샀다.

구석구석 쓸고 닦고 또 닦으면서 매일 반복되는 일인데 왜 청소할 때마다 치울 게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문득 깨달은 것은 집에만 있으니 돈 쓰는 기계가 된 것 같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나간다.

소소하게 정리하고 치우고, 작은 가구를 다시 배치해 보고, 먹고, 자고..

매일 일과가 반복되었다.

그 와중에 격리 생활 잘 마치고 한국 생활 힘내라고 친구가 네오플램 피카 프라이팬도 선물로 하나 보내주었다.

아직도 배달 앱 안 깔고 꽉 찬 냉장고를 비우고 있는 격리 생활 먹방에 아주 요긴한 아이템이다.

기름이 프라이팬 위에서 또로로 굴러다니는 걸 보니 요즘 핫한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역시 요리는 장비빨이다!

가구도 다 샀고, 정리도 얼추 끝나니 선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러나 쇼핑몰에서 온갖 택배를 주문하고, 이삿짐 정리+집밥 격리생활의 후유증은 엄청난 쓰레기였다.

격리 동안 함부로 버릴 수 없었기에 한 곳에 모아놓았다.

사진으로 보니 많아 보이지 않지만 쓰레기도 30분을 넘게 정리해서 저렇게 적게 보이는 것이다.

시간의 개념 없이 며칠을 보냈다.

햇빛을 안 보고 형광등만 보니 대만에서 태웠던 내 피부는 조금씩 하얘지고 있었지만 몸의 움직임이 많이 둔해졌다.

아무리 홈트를 한다고 해도 야외 활동에서 쓰는 에너지만큼 몸에 활력이 돋지는 않았다.

뭘 했다고 2주가 금방 지나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슬슬 자가격리 해제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 정리는 침대 위 창문에 블라인드를 셀프 설치를 마무리로 끝이 났다.

혼자서 설치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지만 다 하고 나니 뿌듯함이 몰려왔다.

하루 자가격리 앱에 자가 건강 체크를 하루에 2번씩 성실히 했더니 모니터링 담당 공무원은 이제 연락이 없다.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

 

그리고 열두째 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격리 해제 전 마지막 PCR 검사를 받으러 오라는 것이었다.

대구 북구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나는 오전 11시 검사를 선택하였다.

 

# 열셋째 날

엄마가 나를 보건소에 데려다 주기 위해 왔다.

나는 오랜만에 외출이라 기분 좋게 뛰어나왔는데 쨍쨍한 햇볕에 순간 어질어질했다.

너무 오랜만에 나와서 해를 보니 그런 듯했다.

매일 재난 문자로 폭염 경보도 오던데 역시나 더웠다.

보건소에는 10시 35분에 도착하였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의 줄이 길었다.

이 더운 날 선별 진료소 더운 방역복 입은 의료진들을 보니 내가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이날은 특히나 사람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대구 북구 요식업 관련자들은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는 것이다.

요 근래 코로나 확진자들이 계속 1,200~1,600명대로 나와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사진에는 내 앞줄만 나왔지만 내 뒷줄은 앞 줄보다 3배는 긴 듯했다.

워낙 검사받는 사람들이 많으니 보건소 관계자가 확성기를 들고 얘기했다.

원래는 다음 날 12시까지 검사 결과 문자를 보내주는데 사람이 많아 오후 3시까지 늦어질 수 있으니 결과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집에서 격리하고 절대 이탈하거나 다른 사람을 접촉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겁이 많으니까 그런 건 말을 잘 듣는다.

고로 11시 30분에 검사를 마치고 나서 어디 돌아볼 것도 없이 엄마 차를 타고 그냥 형광등 아래 방구석으로 돌아왔다.

잠시의 외출이었는데 많이 더웠지만 조금 더 걷고 싶었다.

그래도 하루만 더 참으면 되니까..

 

# 격리 마지막 날

드디어 격리 마지막 날이다.

이런 날 오히려 더 힘을 내서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9시까지 늦잠을 잤다.

씻고 정신 차리고 바나나 하나를 입에 물고 있으니 생각보다 빨리 음성결과 통보 문자가 왔다.

이제 정말 한국에서 내 행동 제약이 없구나 하는 기쁨이 몰려왔다.

마침 나의 자가격리 모니터링 담당 공무원인 '류ㅇㅇ'님이 전화가 왔고 음성 판정에 축하로 마지막 통화를 마쳤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는데 여기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날들을 코로나와 사투하고 있을까 싶다.

'류ㅇㅇ님'도 사실 보건 쪽이 아니라 도시 정비 쪽 공무원인데 코로나 인력부족으로 전혀 관련 없는 업무를 해야 했다.

내가 집에서 먹고 자고 숨만 쉬며 편안한 격리 생활이 가능했던 건 코로나 관련 의료진, 행정인력, 군인들까지 그들의 고생과 맞바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군~


격리가 끝나고 엄마에게 가니 축하로 자전거를 선물 받았다.

스타카토 Sen Set LX 20인치 접이식 자전거이다.

격리 끝나자마자 첫 한국 생활의 시작이 자전거로 시작하다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나는 자전거에 '벨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벨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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