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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6

[항암일기]항암주사 보름 후, 나는 빡빡이가 되었다. 2012년 10월 말. 제법 쌀쌀함이 느껴지는 가을이었다. 몸 상태는 항암주사 3일 후부터 엄청나게 나빠졌고, 나름 소소하게 계획한 것들을 하루 이틀 빼먹게 되는 몸뚱이의 상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나는 너무 예민해져 있었고, 매일 내 육체는 정신과의 싸움에서 졌다. 그래도 강아지와의 외출은 빼먹지 않았고, 산책을 하고 오면 그나마 약간의 힘이 붙긴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정확하게 항암주사를 맞은 지 보름이 되던 날. 미용실 원장님이 잘 정리해 준 내 머리 스타일에 변화가 왔다. 이상하게 하루 전부터 머리 두피가 욱신거리더니 머리에 손을 대는 순간 정말로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이 연출됐다. 머리카락이 한 주먹씩 쑥 빠졌다. 나는 왼쪽 주먹에 빠진 머리카락 한 뭉.. 2021. 6. 20.
[항암일기]나의 항암치료 중 활력소, 강아지 내가 항암치료를 하던 대구 집에는 말티즈와 사모예드의 예쁜 믹스견인 댕댕이 1마리를 키웠다. 말이 좋아 믹스견이지 '앉아, 일어서!'도 못 알아듣는 영락없는 똥개이다. 뭐.. 그런 거 안 가르친 주인 탓이지.. 이름은 개영심이다. 영심이를 집에 데려올 때 원래 우리 가족들은 영심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예쁘게 지어주려고 했다. 근데 2년정도 다른 주인이 키우던 개라서 그런가 영심이라는 호칭에 유난히 반응을 했다. 결국 이름 바꾸기는 실패했고, 남동생의 이상한 심술에 의해 개영심이라고 부르게 됐다. 성격도 너무 소심해서 사교성도 없지만 산책을 좋아하고 우리 가족에게는 늘 웃음을 주는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 그러나 내가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됐고, 요양을 대구 집에서 하다 보니 할머니 입에서 환자 옆에 개가.. 2021. 6. 19.
[항암일기]첫 항암 후 나에게 찾아온 변화 나는 3주에 1번씩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 항암주사를 맞고 대구 집에서 요양했다. 첫 항암 후 찾아올 내 몸의 변화에 대해서 의사와 간호사가 입이 아프게 설명을 해줬지만 역시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너무나 낯선 것들 투성이었다. 첫 항암주사를 맞은 다음날 아침에 나는 빨간 피 색깔의 소변을 보았다. 3일 정도 빨간 소변을 보고 나서는 딸꾹질, 방귀, 트림 등의 생리 현상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화장실을 가는 횟수가 급격히 많아졌고, 소변을 본 후에도 항상 덜 본 것처럼 찝찝했다. 물을 많이 마셨지만 그 많은 물이 내 몸속 어디에 다 저장이 되어 있나 싶을 정도로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없었다. 그 물도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먹을수록 왜 이리 비린내가 나는지 물만 먹어도 역겨움이 위에서 올라왔다. 2주.. 2021. 6. 19.
[항암일기]첫 항암 치료를 받던 날 2012년 10월 19일. 3년을 넘게 지낸 정든 서울 자취방을 정리했다. 이제 겨우 방 꾸미는 재미를 들여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가구, 소품, 가전기기, 잡화들 모두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처음 부동산 아저씨와 신발을 신고 둘러봤을 만큼 아무것도 없던 방이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한기가 가득했던 이곳에 힘들게 이사를 하고 바닥 청소를 3번이나 해도 좋았다. 이 빈방을 내가 하나둘 만들어갈 생각에 설렜다. 그리고 정말로 조금씩 돈을 모아 계획대로 하나둘 채워질 때마다 성취감도 느꼈다. 모두 나의 흔적과 온기로 가득한 나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은 며칠 만에 하나둘씩 사라졌고 그때마다 내 가슴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다시는 이 생활로 못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손만 떨며 처음.. 2021. 6. 18.
[항암일기]다시 대형병원 암센터에서 검사를 받으며... 2012년 10월 초. 나는 대구 이경외과에서 했던 조직 검사 결과를 들고 삼성서울병원 암센터로 갔다. 역시 대형병원이라 검사 일정이 체계적이었고 나는 간호사가 알려준 검사 일정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당장 하루 만에 의사를 보고 진료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환자 등록부터 MRI와 CT, PET, 혈액, 초음파 등 온갖 검사를 추가로 더 받아야 했다. 근데 검사보다는 대체로 검사를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기에 긴장이 풀리고 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자연스레 둘러보게 되었다. 내 옆방 검사실에는 소아암으로 힘든 투병을 하면서도 초콜릿이 먹고 싶어 엄마를 조르는 8살짜리 꼬마, 내가 검사실 복도에서 대기할 때 아픔을 참지 못해 의사에게 소리 지르고 짜증 내던 노란 머리 외국인 언니. 내가 잠.. 2021. 6. 17.
[항암일기]유방암 판정을 받은 날, 그 첫 기억 2012년 봄, 내 나이 만 25세였다. 왼쪽 가슴에 딱딱한 돌덩이가 잡혔다. 사실 멍울이 만져진 것은 6개월도 훌쩍 넘었다. 아무리 잠을 자고 쉬어도 몸은 항상 피곤했고, 늘 몸살과 감기를 달고 살았다. 살이 10kg 가까이 쪘고, 매일 아침 세수를 할 때마다 코피가 펑펑 났다. 어찌나 피가 많이 나는지 세수할 때마다 세면대와 얼굴 전체가 피범벅이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멍울의 통증은 엄청난 고통이었고,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혹시 이게 유방암인가 싶어서 혼자 인터넷을 뒤져가며 자가 진단도 했다. 수많은 증상들이 겹쳤고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병원을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병원에서 정말로 유방암 판정을 받음과 동시에 20대에 암 환자라는 낙인이 너무나도 두려웠고, 주변 또래들과 치열하게 경쟁하.. 202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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