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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유방암 투병기

내가 유방암 환우 모임을 안 하는 이유

by 정이모음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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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이모음입니다.

저는 유방암의 힘든 날들을 지나 어느새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치료 기간 중에도 열심히 재미를 찾아 무언가를 많이 배우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환우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하거나 모임에는 전혀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유방암 환우 모임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주의) 시작하기 앞서 이 의견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일 뿐이지만,

굉장히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야기이므로

환자 보호자나 주변인이 아닌 암환자 당사자가 직접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으로 힘들 수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당시 20대였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은 결혼이다, 이직이다 일상의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암환자 모임에 처음엔 저도 굉장히 긍정적이었습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뭐가 나쁠까? 오히려 서로 위로가 되어주고 좋지 않을까?'

정말로 그랬습니다.
그 인연들은 대부분 병원에서 만났고, 동생, 언니, 이모 등 다양한 연령층의 환우들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연락을 하거나 살갑게 인간관계를 챙기는 편이 아닌데도 처지가 비슷하니 대부분 저에게 친절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 정을 주며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방암 환우들과 가장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몇몇의 췌장암, 대장암, 폐암, 자궁암 투병 중인 환우들과도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힘들 때면 '갑작스레 가는 뇌, 심장 관련 병도 아니고, 교통사고도 아니잖아.. 천천히 준비할 시간이 있는 암환자라는 사실이 더 다행이야.' 라며 종종 자기 위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은 암환자라고 해서 병의 중증도가 같지는 않았습니다.

 

유방암 초기였지만 함께 병실을 공유하며 누구보다도 활기가 넘치는 투병생활을 하던 38살 큰 언니가 1년도 되지 않아 병원 침대에서 끝내 두 발로 못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가족은 큰 언니의 전화번호로 장례식 안내 문자를 보내왔지만 저는 끝내 가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다시 몸이 좋아질 거라 믿었는데 모든 게 다 의미 없음을 느끼며 저의 생활은 무기력해졌습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엄청난 공포를 느끼며 자다가 가위에 눌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진정할 줄을 몰라 밤이 새도록 책을 보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로도 몇몇 환우들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몇 번의 장례식 안내 문자를 더 받았고, 이때의 트라우마가 컸던 탓인지 저는 더 이상의 새로운 교류를 가급적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될 줄 알았습니다.

 

이후 저는 병원을 퇴원하고도 나름 건강이 호전되고 있는 분들과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암이 거의 호전되었다는 소식에 같이 밥을 먹고 웃으며 2주 후에 보자던 분이 약속 당일 장례식 안내 문자를 보냈을 때 저는 심한 배신감과 함께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로봇 같다, 냉정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예민함이 더해져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냉소적으로 변하였습니다.

 

해결 방법은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로 시선을 돌려 정신없게 만드는 것뿐이었습니다.

병원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며 면역 주사에 집착하기도 하고, 책을 붙들고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몸이 힘들고 바쁘니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긴 했지만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는 않습니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암이 다시 재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거든요. 

항암 투병을 마치고 병원에서 퇴원하는 분들은 으레 한 번씩 거치는 심리적 코스인데 내가 너무 과장해서 받아들인 건가 싶기도 하고요.

어쨌든 시간이 약이라고 바쁜 일상으로 살다 보니 무뎌지긴 했지만 정말로 마음이 괜찮아지는데 좀 오래 걸리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들과 웃고 떠들며 좋았던 기억들만 떠오르는데요.

매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재검진 검사 결과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고 대구로 내려오는 기차를 탈 때면 이상하게도 그분들과 함께 먹었던 사과 한 조각, 더치커피 한 잔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아마도 환우들과의 모임에서 내가 그만큼 정서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의지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요즘에는 투병기간 동안 저에게 유익한 것들로 많이 채워준 그분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들었습니다.

뭐.. 작심삼일 다짐이긴 하지만 이제는 가위도 악몽도 꾸지 않고 평온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매년 삼성서울병원에서 재검진을 받는 나..

저는 앞으로도 투병 당시 교류했던 분들과의 좋은 기억들만 간직한 채 남은 몇 분들께 연락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그분들도 유익했던 부분만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길 바랄 뿐입니다.

 

이상으로 제가 암환자 모임을 더 이상 하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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