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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유방암 투병기

항암일기를 다시 쓰기로 마음 먹다.

by 정이모음 2022.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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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이모음입니다.

 

요 며칠 비가 많이 내려 더위가 조금 식으면서도 기분이 차분한 날들이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은 아직도 불안정하고, 바쁜 현실의 반복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항암치료 때 썼던 일기장을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 띄엄띄엄 블로그를 손 놓지 않고 이어온 덕분에 우연히 시작된 소통으로 좋은 인연들이 생겼거든요.

 

비 오는 날 괜히 기분을 탓하며 나의 과거 감성에 빠져들기 참 좋았을 뻔했으나.. 

역시나 중간중간 남에게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맹세컨데 이 항암치료 일기장은 흑역사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블로그에 모두 올린 후 반드시 찢어서 불태워 버릴 겁니다.

나의 항암 일기장 첫번째 노트

처음 블로그로 내 항암치료 경험담을 쓸 때는 나 스스로도 이걸 누가 보겠나 반신반의하였습니다.

주변의 가장 친한 친구들 조차 공감해주지 않았던 힘든 경험이었으니까요.
다들 20대 철부지에 죽을 만큼 아프다는 개념과 심각성을 몰랐고, 함께 만나는 시간들이 점점 불편해졌기에 제가 먼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했습니다.

 

같은 20대 철부지였던 나 스스로도 혼자서 인간관계 단절과 고립을 감당하기에는 벅찼지만 지금 당장 내 상황이 급했기에 늘 괜찮은 척을 하였습니다.

근데 일기장에는 하나도 안 괜찮았던 나의 솔직한 이야기들로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이야기와 감정선을 적나라하게 토해 놓았는데 한국에 나 같은 애 한 명은 있겠지 싶어 그때 내용들을 블로그에 내 방식대로 하나 둘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난 기억들을 되살려 열심히 블로그에 항암 일기를 썼는데 그것도 잠시 끓다 마는 열정이었을까요?

어느 날부터 블로그에 일기 내용을 업로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들이라 생각했는데 일기장을 보며 그날들을 다시 곱씹으니 생각보다 긴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원한 항암 일기는 몸은 아파도 마음만큼은 밝고 긍정적으로 힘차게 위기를 잘 극복해내는 인간승리.

그러나 현실 일기장에 적힌 내용 5일 중 4일은 너무 고통스럽고 암울한 날들의 무한반복.

 

그 와중에 성실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은 하였지만, 솔직히 일기장 군데군데 지금도 아프다, 위가 옥죄여 온다, 토했다, 잠을 못 잤다는 내용으로 노트 한 권을 꽉꽉 채우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쓸 내용에는 '아팠다, 힘들었다, 그래도 버텼다'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나의 징징거림을 듣고 싶을까요?

그런 마음가짐에 항암 일기는 오랜 시간 업데이트되지 않고 방치되었습니다.

 

근데 요 며칠 전부터 이런 글에도 간절한 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이고 힘든 생활 반복 투성이었지만 그분들은 하나같이'...... 그래도 버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다'에 더 집중하여 비록 자신의 몸이 아픈 현실이라도 더 치열하게 살아내려는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떨결에 긍정적이고 자신의 인생에 책임감을 가진 분들과 시작된 소통에 뭔가 기분이 좋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점으로 내가 해야 될 이야기는 아파도 밝고 씩씩한 환자 일상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하게 하나도 안 괜찮았던 날들, 어떻게든 버텨내서 다시 건강하게 일상을 지켜내고 있다는 그 존재 자체였습니다.

아기자기 소녀 감성 브이로그가 아니라 실화를 다룬 생존 다큐멘터리였던 거죠.

 

그래서 다시 항암 때 썼던 기록들을 보며 그때의 경험담을 하나씩 이어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암울하고 힘겨웠던 날들도 거침없이 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에는 어쩔 수없이 부정적이고 적나라하게 쓰인 부분들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연결하여 '결국에는 버텼다.'고 희망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쁜 현실에 치여 있어 블로그 업로드가 느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 번 해봅시다!


마지막으로 이번 소통의 계기로 예쁘게만 포장하고 미화하고 싶었던 나의 힘든 시간들을 다시 되돌아보고 생각할 기회로 만들어 준 보이투마마님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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