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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유방암 투병기

[항암일기]식생활이 바뀌지 않은 채 끝이 난 항암 첫 주기

by 정이모음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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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겨우 만 25살이었던 나는 왼쪽 가슴에 5.4cm의 암덩어리가 있었고, 주치의 선생님들의 결정에 따라 항암 주사, 외과수술, 방사선 치료 순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첫 항암주사를 맞은 다음 날, 빨간 소변을 보면서 피곤함을 느꼈고 3일 만에 울렁거림과 찢어지는 듯한 위통, 두통에 처음으로 구토를 했다.
물에서도 비린내 나서 음식을 쉽게 먹지 못했고, 가슴 멍울 통증도 잦아서 갑작스럽게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는 순간이 많았다.

 

약 10일 정도가 지나기 전까지는 소변, 딸꾹질, 트림, 방귀 등의 생리현상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답답하고 힘들었다.
면역이 점점 약해지면서 15일 만에 슬슬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눈썹과 팔, 다리, 겨드랑이, 사타구니 모든 털이 다 빠졌다.

 

첫 항암주사 주기인 3주를 견디면서 세상 처음 겪는 신체적 고통과 함께 점점 환자로 변해가는 내 겉모습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근데 이때는 몰랐다.
그래도 첫 항암주사라서 신체적 고통은 이후의 항암주사 주기에 비해서 가장 견딜만한 했다는 것을 말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과연 나는 얼마나 각성하고 변하였을까?
첫 항암 때 매일 적어 내려간 일기장을 보며 나는 무엇을 먹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아침에 일반식 식사 먹고 요거트 하나, 점심에 시장에서 떡볶이, 김밥, 순대를 먹고 토했지만 저녁에 다시 일반식..

다음 아침에 속이 안 좋아 건강식 주스 먹고 낮에 라면과 간식으로 빵 한입, 저녁으로 수육..

그리고 다시 아침에 일반식 식사 소화 못해서 남기고, 점심때 국물 타령하며 라면 등등..

 

이렇게 쭉 보고 있으니 많이도 먹어댔다.

운동도 격하게 할 수 없는 몸인데 살이 안 찔 수가 없는 식단이다.

참 신기하게도 몸과 주변 환경은 이미 환자의 상태로 바뀌었는데 '나'라는 인간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조금만 매워도 토해냈지만 시장통을 지나가면 떡볶이에 자동으로 손이 갔고, 토하고 나서도 빵과 라면에 손이 갔다.
물론 건강식을 안 찾아 먹은 게 아니다.
건강식을 다 먹고도 채워지지 않는 평소 자극적인 맛에 배가 불러도 자꾸 습관적으로 손이 갔다.

 

의지를 갖지 않고 무의식으로 행동하는 습관이 이렇게 무섭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내가 그 꼴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암 선고를 받고도 나는 한 번에 변할 수 없었다.
흡연자가 폐암을 선고받고도 왜 담배를 끊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왜 술을 못 끊는지 이해가 됐다.
나는 건강식 한 번에 자꾸 보상심리로 예전의 것을 찾아댔고, 잠자는 시간도 들쭉날쭉, 불규칙판 생활의 선두주자였다.

변화라고 말하긴 그렇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흉내만 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무절제한 식생활과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 습관을 고치지 못한 채 어영부영 1차 항암 기간인 3주를 그냥 흘려보냈다.

그때는 그런 생활이 참 당연할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왜 암환자가 됐는지, 하루하루를 얼마나 위험천만한 하게 보냈는지 격하게 인정하게 됐다.

 

3주의 시간을 보내고 일기장을 읽으며 계속해서 자기반성과 함께 이대로는 안된다고 또 다짐을 했다.

뭔가 데자뷔처럼 첫 항암을 하던 날과 똑같은 마음가짐, 똑같은 상황이었다.

어차피 젊은 나이에 암 걸려서 이번 인생은 망했지만 여기에서 더 깊은 지하로 폭망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상한 심리가 발동했다.

 

뭔가 의지를 받쳐줄 행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을 생각해 보느라 시간을 한참 동안이나 보냈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으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먹은 것들을 보니 일단 스스로 식탐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식탐을 서서히 내려놓는 게 일 순위였다.

 

일단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먹어대니 밖에서 사 오는 음식을 줄였다.

그리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하루에 한 끼 이상은 무조건 내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식사를 준비하고 먹었다.

이 방법은 꽤나 유용했다.

 

식사 준비를 안 하면 밖에서 사 온 음식도 없으니 먹을 게 없어서 배는 고프고,

식사 한 끼 준비하는데 시간과 손이 왜 이리도 많이 가는지 할머니의 노고를 알 수 있었고,

나름 내가 했으니 맛은 없어도 끝까지 잘 먹게 되고,

안 그럼 간단하게 차려놓고 먹고 마니 많이 먹지도 못하고...

 

처음에는 더 많이 자극적인 음식을 원하는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성깔을 부렸다.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내 몸의 투정을 이겼다.

나는 점점 건강식에 익숙해졌다.

 

식사 준비에는 일반식의 모든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했기 때문에 가끔씩은 걸쭉하게 크림 파스타, 치즈 떡볶이를 만들어 먹은 적도 있다.

항암 치료 때 해 먹던 크림 스파게티를 지금도 종종 해 먹는 걸 보면 그 입맛 어디로 가지는 않는가 보다.

항암 치료 때부터 내가 해먹던 크림 파스타

입맛은 바꾸지 못했지만 습관은 확실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밥을 먹어야 하면 쌀부터 씻고 마지막 밥솥까지 내가 모두 설거지로 마무리해야 했기 때문에 그 수고로움을 벗어나려고 가끔 마트로 달려가 불가리스 요거트를 사서 바나나와 함께 먹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돌아오는 두 번째 항암 주사 주기를 준비하며 점점 배달과 외부 음식들을 줄여가고 있었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다 될 줄 알았지만 항암 투병 중에도 바뀌지 않았던 내 식생활을 떠올려보니 마음먹는 것보다 행동의 규칙과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지금도 내 손으로 밥하는 게 역시나 귀찮을 때가 많고, 맛이 없을 때도 있고, 칼로리 폭탄에 탄수화물 덩어리 음식들도 먹는다.

그래도 그때 이후 지금 확실히 자리 잡은 나의 습관 중 하나는 배달 음식보다는 집밥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기본적인 나의 행동 규율만으로도 어쩌다 먹는 배달 음식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양껏 즐길 수 있지만!!

아직 내 폰에는 배달 앱이 깔려 있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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