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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유방암 투병기

항암치료 중 내가 꼭 지킨 습관 5가지

by 정이모음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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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를 하면서 내가 스스로 만들어 놓고 지킨 규칙과 습관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고, 호불호도 갈릴 수도 있다.

현재 건강해진 내가 예전 투병생활을 돌이켜 보니 나에게는 이 방법들이 꽤 좋았다.

그 외에도 시도하고 실행했던 것들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습관들을 나열해 보려고 한다.

 

1. 먹거리 

아침엔 사과, 고기도 충분히, 보양 음식은 절제!

나는 하루의 일과를 사과로 시작했다.

매일 아침 식사 전에 먹는 사과는 산뜻함과 동시에 소화를 도와주었다.

물조차도 비려서 구역질을 하는 날에는 사과가 나를 위로하였다.

굳이 사과일 필요는 없지만 사시사철 편리하게 구할 수 있는 과일이다 보니 바나나와 함께 가장 많은 먹은 듯하다.

혈당 조절을 하는 사람들은 예외지만 유방암 환자들은 신선한 과일을 마음껏 먹어도 상관없다.

덕분에 지금도 날마다 과일을 먹는 습관과 더불어 과일을 깎는데 도사가 되었다.

 

식사 중에는 대부분 평소의 일반식으로 먹었다.

물론 적당히 튀김과 자극적인 음식을 걸렀다.

그중 특히 붉은 고기는 몸에 안 좋다고 해서 육고기를 안 먹는 암환자가 엄청나게 많지만 나는 오히려 양껏 잘 먹었다.

이건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한다.

입도 거칠어진 암환자가 자력으로 씹어먹지 못할 만큼 힘이 없거나, 토하거나, 소화를 못하거나..

방법도 가지가지로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건 꽤 힘들기 때문이다.

자꾸 붉은 고기는 안 좋다는데 요리 방법을 바꿔서 수육으로 해 먹거나 적당히 먹어줘야 몸에 힘이 붙어야 암세포와 싸울 힘도 남아난다.

 

근데 참 신기하고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저것 다 가리고 안 먹으면서 보양음식은 그렇게 먹어댄다.

나 항암치료 때는 대표적인 게 개똥쑥, 상황버섯을 우린 물이었다.

이것들은 아프기 전 일반 사람이 먹으면 평소 기력 보강과 건강 효과에 좋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암환자의 몸은 기본 영양소도 없어서 유아처럼 면역도 떨어지고 힘도 못쓰는데 거기다가 운동선수 전용 부스터를 마시는 셈이다.

개인 뇌피셜이지만 이건 암환자에게 독약이다.

근데 조금이라도 몸에 좋다는 말에 이리저리 휘둘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겠다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때 그렇게 이성적이고 똑소리 나던 우리 엄마도 중심을 못 잡고 혹하고 넘어가서 나에게 상황버섯 물을 권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의사들은 늘 일반적으로 먹는 것을 양껏 먹되 절대 과하게 먹지 말라고 했다며 무한반복 대답했다.

워낙 옹고집 똥고집으로 독불고집이었던 나였기에 순순히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엄마의 말이 기억이 난다. 

 

세상에는 의사 말이 다가 아니야!

그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효과 좋은 민간요법도 있어!

 

응, 아냐!! 절대 들으면 안 된다.

그 방면으로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검증하지 못한 걸 굳이 운에 맞긴 채 내 몸에 생채 실험을 할 필요는 없다.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2. 몸 움직이기 

하루에 걷기는 무조건 1시간 이상 채우기!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내가 항암치료를 할 때 항상 옆에서 의지하던 존재였다.

나는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강아지 산책과 목욕을 담당했으므로 매일같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겨울에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날에도 외투 두 겹에 우산을 들고 무조건 나가 걸었다.

덕분에 사색이라는 것도 하고, 몸에 열이 나면서 활력이 붙는 걸 느꼈다.

이쯤 되면 내가 강아지를 돌보는 건지 강아지가 나를 돌보는 건지 모를 일이다.

너무 아파 죽을 것 같은 날에는 신발을 신고 문 앞에서 끙끙 앓는다 해도 나가 걸었다.

5분 만에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바깥공기를 마셔야 한다.

힘들어서 쓰러지면 어쩌나 싶겠지만 그럴 거면 집에서 쓰러지는 것보다 밖에서 쓰러지는 게 더 안전하다.

적어도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하고 119에 신고라도 해주지만 집에서는 가족들이 내가 자는 줄로만 안다.

태풍이 와서 못 나가면 집에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요즘 같은 날에는 베란다에서 햇볕이라도 쬐어야 한다.

안 그러면 하루 종일 생각 없이 멍해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개념조차 관심이 없다.

이렇게 오늘을 보내면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오로지 내가 고통스럽고, 불쌍하고, 세상 슬픈 나만의 부정적인 세상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다 흘려보내면 안 된다.

아픈 와중에도 그 안에서 스스로 희로애락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활력이 생긴다.

산책이 가고 싶은 우리집 댕댕이

 

3. 하고픈 일 계획 세우기

일주일 후에 시작할 거라는 마음으로 구체적으로 계획 만들기! 

사람은 내일의 꿈이 생기면 눈빛이 달라진다.

그래서 꿈 많은 어린이들의 눈빛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고 나면 누구나 절망으로 눈빛이 죽어버린다.

그 눈빛을 되살려서 나에게 활력을 넣어야 한다.

몸을 움직여 신체적으로 활력을 넣었다면 가만히 있는 시간에는 나의 마음의 활력을 넣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단 못 먹어도 GO!라는 마음으로 당장 일주일 후에 할 일처럼 바쁘게 계획을 세웠다.

내가 못 이루고 죽는다고 해도 만약 나의 사람들이 나의 계획을 알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 일을 마주할 기회가 있을 때 나를 떠올리고 추억하며 진행할 것이다.

이건 내가 못해보고 죽는 게 아니다.

죽어서도 내가 그 사람들로 인해 그 계획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엑셀 파일로 굉장히 구체적으로 적은 몇 가지 계획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다음 주 떠날 것처럼 여행을 계획하며 예산과 일정을 만들어 놓았고, 다행히도 건강해진 몸으로 그 계획 노트를 추억하며 생애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실천되지 못한 몇 가지 계획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 공간 꾸미기이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 내가 원하는 방 꾸미기를 완성하지 못한 게 영 마음에 남았는지 꽤나 집착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조만간 이사를 통해 내 취향의 인테리어로 곧 이루어질 것 같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난 후 나홀로 제주도 여행

힘든 날 당시의 계획들을 하나둘 해낼 때마다 내 마음은 늘 남다른 뭉클함과 스스로에 대한 기특함이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나는 이 방법을 적극 추천한다.

 

4. 나를 기록하기

나의 시간도 의미가 있다!

항암치료를 하는 최종 목적은 나의 건강을 되찾기 위함이다.

그 과정이 고단하긴 하지만 내가 아파서 괴로워하는 시간들도 결국에는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생산적인 시간이다.

절대 죽은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그 힘든 시간들도 모든 적어두어 기록하는 것이 좋다.

그때는 밥을 해 먹고 설거지하고 강아지와 놀고 너무나 평범한 일상들이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솔직히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근데 일기장을 꺼내 보면 하루하루에 내가 어떤 기분과 컨디션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자세히 나와있다.

어느새 이 일기장은 나에게 이미 조선실록만큼이나 큰 의미를 가지는 역사 기록이 되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201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놀랍게도 직접 크림 파스타를 해 먹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의외의 메뉴에 엄마도 놀랬다고 적혀있는데 지금 보니 웃음이 났다.

항암 투병 시 썼던 일기장 - 2012년 12월 24일

나의 흔적을 글로 남기는 순간 그 시간은 잊어버리고 없어지는 그냥 아팠던 흔한 시간들이 아니다.

내 일기장에는 내가 무엇을 사고 어떻게 아팠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도 그 과정들이 생생히 적혀 있었다.

그 외에도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들은 포스트잇에 적기도 하고, 급한 대로 마트 광고지 위에다가 적은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항암 투병 이후 노트와 필기류에 새로운 집착이 생겨 고급 문구를 수집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렴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나의 힘든 시간조차도 의미가 있고 스스로 존재감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5. 소리 주문 걸기

간절한 것은 입 밖으로 소리 내어야 한다.

스스로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가장 힘든 시간에 꼭 필요했던 습관이었다.

처음에는 아무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밤에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고통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정말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때 마침내 옆에는 늘 우리 집 댕댕이가 쫄랑쫄랑 따라다녔는데 그 강아지를 꼭 안고 어느새 아파 죽을 것 같다고 투덜대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나는 어김없이 우리 댕댕이를 안고 불평을 했고 댕댕이는 대답 없이 눈만 꿈뻑이며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너무 불평만 한 것이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말했다.

 

기다려봐. 내가 이 통증만 가라앉으면 간식 줄게.

지금은 너무 어지러워서 일어나기가 힘들어.

조금만 버티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강아지 간식 주려고 내가 통증을 버틴다니..

괜찮아, 조금만 더..

처음으로 이 말을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저런 말을 한다고 통증이 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극단적으로 패닉에 빠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나중에는 조금 더 간절함을 담아 주문을 걸듯 말했다.

 

나는 잘하고 있다. 이 순간도 지나간다. 나는 그저 지나가고 있다.

 

솔직히 중간중간에 욕을 더 많이 섞어서 말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울면서 소리를 질러가며 목소리를 내어 중얼중얼거렸다.

신기하게도 당시에는 좀 더 버틸 힘이 생겼고 말을 하면 할수록 이 말에 익숙해지고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평소에도 중얼거리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상황에 마주할 때도 저 말을 늘 되뇌었다.

나는 말처럼 정말로 그 순간을 지나왔고, 앞으로는 항암 투병보다 더 힘든 날은 안 올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때와는 결이 다른 또 다른 고통에 종종 힘들어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예전처럼 소리 내어 주문을 걸어 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별거 없는 내용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이 사소한 습관들로 하루를 채워낸다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치료가 끝나고 다시 건강한 삶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유지될 만큼 꽤 생산적인 습관들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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