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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유방암 투병기

[항암일기]항암 치료 중 처음으로 헬스장을 가다.

by 정이모음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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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생전 숨쉬기도 겨우 하던 몸뚱이로 일주일 정도 1시간 걷기 운동을 실천했다.

늘 일에 치여 살아서 가을 길거리가 노랑 빨강 그리 예쁜지도 몰랐다.

걷기 정도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아지와 산책을 다니면서 강아지보다 더 빨리 지치는 게 내 저질스런 몸뚱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운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엄마는 본인이 평소에 다니는 헬스장에 나를 등록시켰다.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일주일이 되지 않았던 때라 나의 모습에 변화가 없었기에 당시 우리 가족들은 이때까지 심각성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남들보다는 순탄하게 투병생활을 한다고 착각하여 파이팅을 외치며 다소 과한 열정을 보였다.

 

헬스장은 걸어서 20분 거리였기에 엄마 차를 타고 헬스장으로 향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차 냄새에 멀미를 했다.

그리고 헬스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속이 안 좋기 시작했고, 탈의실에서 헬스장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니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빛의 속도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엄마도 러닝머신을 타려다가 나를 뒤쫓아왔다.

결국 먹은 것을 모두 토해버렸다.

내가 토하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속상했는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침에 먹은 게 죽밖에 없는데 왜 죽도 하나 소화 못 시켜!!!

 

나도 너무 갑작스럽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탈의실로 돌아와 저혈압 때문에 제자리에 주저앉아 쉬었다.

엄마가 갖다 준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몇 분 동안 쉬다 보니 캄캄하게 보이지 않던 앞이 서서히 보이고 속이 좀 가라앉았다.

다행히 열도 떨어졌다.

그렇게 헬스장 방문 첫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줄곧 탈의실에 앉아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이 저질스런 몸으로 내가 운동은 무슨 운동이야.

 

그리고 나는 다음 날 다시 헬스장으로 향했다.

다다음 날도 그다음 주도 어김없이 9시 30분이 되면 엄마와 함께 헬스장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겪은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헬스장 첫날 등록에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의지 다잡는 데는 쩐의 압박만큼 강력한 게 없다.

 

헬스장에 도착해서는 가장 먼저 오른쪽 팔뚝에 심어진 '말초 삽입 중심정맥관' 투명 튜브를 랩으로 칭칭 감았다. 

그리고 여태껏 누군가에게 배워 본 운동이 없었기에 엄마의 운동 순서를 따라 하였다.

누가 봐도 줌마 헬스 루틴이었지만 사실 이것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점점 고단했다.

 

러닝머신으로 몸 풀길래 같이 탔지만 강아지와 산책 때처럼 걷다 쉬다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절하기 힘들었다.

기구들은 아주 가벼운 강도로만 이용하였고, 근력 운동은 어지러워서 자주 주저앉았다.

바로 앞에 있는 어마어마한 헬창들은 저 멀리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일 뿐이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매트 깔고 했던 스트레칭은 좀 할 만했다.

근데 체계적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른 채 초보자가 초보자를 엉성하게 따라 하다 보니 오히려 몸만 피곤하고 효과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내 몸의 상태를 객관화할 줄 몰랐고, 주변에는 운동을 할 줄 아는 조언자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일반인 운동보다는 재활치료 같은 운동을 해야 했다.

근데 어느 트레이너가 암환자의 운동을 도와주나?

내가 운동 코치라도 행여나 잘못될까 겁이 나서 가르쳐주겠다고 함부로 도와주지 못할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동네 헬스장에서 재활 치료급의 운동 전문가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결국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오전에 헬스장에서 GX 수업으로 진행되는 초급 요가를 참여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요가라는 것을 접해보았다.

중년 여성들이 많은 오전 시간이었기에 그래 봐야 호흡 연습과 스트레칭을 좀 더 발전시킨 다양한 동작을 따라 하는 정도였는데 의외로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나름 몸이 뻣뻣한 편은 아니었기에 수업을 따라가는 게 어렵지도 않았고 항암 통증으로 지친 몸을 살살 달래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유난히 몸이 아프고 부정적인 생각들에서 휩싸였던 날에도 선생님을 따라 호흡과 명상을 하고 나면 그나마 쉽사리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멍 때림과 명상은 한 끗 차이인 것 같은데도 내 마음이 달라지니 참 신기하였다.

 

그렇게 몇 달 동안 요가 수업에 참가하면서 운동이라는 것으로 나의 심신을 단련해 보았다.

몸이 멀쩡할 때 진즉에 좀 할걸...

 

하지만 매일 헬스장을 가는 것이 거리낌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기구를 약간의 이용한 운동과 요가 후에는 땀이 제법 났기 때문에 무조건 샤워를 해야 했다.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이었지만 처음에는 긴 투명 튜브가 꽂힌 팔에 투명 랩을 감아 샤워를 했고, 나중에는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았다.

쳐다보고, 말을 걸고, 위로해주고...

너무 부끄러웠다.

하나도 위로되지 않았고 고맙지 않았다.

그냥 모르는 척해주지...

 

그래도 생각해보면 그나마 내가 나를 위해 파이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헬스장에서 요가하고, 오후에는 강아지와 산책하며 걷기 하고...

항암 주사로 운동 강도는 아주 약했기 때문에 하루 이틀 만에 어떠한 효과를 딱히 본 건 아니다.

 

그러나 훗날 수술과 방사선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이전의 하루 이틀 하던 시간들이 많이 도움되었다.

이것도 운동이라고 습관을 들여놓았더니 이후 신기하게도 수술과 방사선 치료 때 병원에 입원해서도 혼자 스스로 요가 선생님의 수업을 다 외워서 매일같이 병원 침대 위에서 따라 하고 있었다.

함께 입원했던 큰언니들이 처음에는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참 이상한 애네. 

몸도 아파 죽겠는데 뭘 그렇게 부지런을 떠니?

그러니 네가 밥을  잘 먹는구나.

무리하지 마라~ 우리 같은 암환자는 절대 안정이어야 해!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이런 기운들도 전염이 되는 것일까?

절대 안정을 외치던 큰언니들이 슬슬 내 동작들을 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무리하지 마라'는 말을 안 좋아한다.

물론 말하는 사람의 억양과 진심과 분위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내가 싫어하는 '무리하지 마라'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내 열정과 의지를 꺾고 기어코 나보다 못한 본인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처음 큰 언니들이 쓴 '무리하지 마라'에는 별난 사람 취급하며 내 열정과 의지를 꺾었다.

그러나 본인들이 조금씩 스트레칭을 따라 하면서 나에게 말한 '무리하지 마라'는 정말 진심이 담긴 뜻이었다.

그때가 아마도 큰 언니들이 밥을 잘 먹기 시작했을 때였던 것 같다.

역시 운동을 해야 잘 먹을 수 있다.

 

항암치료를 하시는 분이라면 초급 요가가 그나마 해볼 만한 운동이다.

여건이 안된다면 요즘은 유튜브도 너무 잘되어서 유튜브 보고 스트레칭이나 홈트로 요가를 따라 하면 된다.

그냥 안 해놓고 몸 아파서 못했다고 핑계되면 안 된다.

솔직히 유방암 환자는 아무리 아프긴 해도 중환자실 갈 정도 아닌 이상 사지는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으니 그냥 제자리에 일어서서 스트레칭부터 해야 한다.

 

유방암이 완치된 지금, 나는 다른 운동을 더 곁들여하고 있지만 그때 배운 요가 스트레칭은 아직도 하고 있다.

이제 몸도 좋아졌으니 요가 선생님을 찾아가 고맙다고 전달하고 싶지만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네.

요즘 집에서 홈트하는 모습 (항암 중 운동기록을 딱히 하지 않아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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