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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유방암 투병기

유방암 환자가 취업하려면 꼭 필요한 것 - 의사소견서

by 정이모음 2021.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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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으로 치료를 모두 마치고 또다시 8년이 지났다.
그동안 해외에 머물면서 생활하다가 이번에 한국에서 다시 일하며 정착하려고 했는데 어딜 가나 나에게 요구하는 게 있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지만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바로 암 병력에 대한 의사소견서 제출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당연한 거라 했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암 병력에 대한 의사소견서는 병원에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 병원이나 가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나의 치료에 참여한 주치의가 작성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 날 잡아 돈과 시간을 완전히 쏟아부어야 했다.
의사소견서를 받기 전까지는 일에 대한 것은 아무 일도 진행할 수 없었고 일정은 일정대로 밀린 채 시간만 흘러갔다.

왜 재진 검사 때는 그걸 생각조차 못했을까??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는데도 이런 사단이 생기다니...
하는 수 없이 2주 전부터 병원에 전화를 걸어 누가 취소한 진료시간을 겨우 잡아다가 예약하고 기차표를 샀다.

아침 6시20분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동대구역 도착

10월 21일.
나는 또다시 새벽부터 부리나케 서둘러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으로 향했다.
재진 검사를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서울행이라니..

오전 10시 진료를 보기 위해 오전 동대구(6:48) SRT를 타고 수서역(8:41)에 도착하니 출근시간이라 그런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수서역 3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 정류장에도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수서역 3번 출구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 정류장

사람이 너무 많아 거의 10분 정도를 더 기다려 앞에 버스 2대를 보내고 셔틀버스를 탑승했다.
나름 기차표를 일찍 샀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도착하니 9시 10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QR코드를 찍고 병원 내 출입이라 병문안이나 보호자 방문이 적을 법도 한데 역시나 병원 내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인파를 뚫고 자동으로 1층 수납 기기에 가서 결제부터 했다.
원래 병원 오면 돈부터 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1층 수납창구(왼쪽), 자동수납기기(오른쪽)

사실 해외 생활에 몇 년 길들여져 의사소견서 같은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병력에 대한 의사소견서를 직접 요구를 받으니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이고 내가 필수로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게도 벌써 몇 년이나 지난 나의 아픈 과거들이 아직까지도 내 일상에 발목을 잡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방암 치료 끝나고 벌써 8년이나 지났는데..
전이나 재발도 없고..
딱 봐도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제일 건강해 보이는데?
난 지금까지 아무런 이상 없이 생활했다고!!


나도 모르게 욱하고 하루 종일 기분이 상했는데 이건 그냥 나의 피해의식이었다.
몸도 마음도 다 극복했다고 믿었는데 어쩌다 가끔 그 흔적이 열등감처럼 분출될 때가 바로 이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진료비 계산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 진료를 기다릴 땐 이미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털어내고 있었다.

그깟 종이 한 장이 뭐라고..
주치의 선생님 얼굴이나 한번 더 보고 와야지!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1층 치유센터 대기실

주치의 선생님은 왜 한 달도 안 지나서 다시 온 거냐며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길래 대답했다.

저 이제 한국에서 먹고살려고요.
저 몸 멀쩡해서 이제 아무 문제없다고 의사소견서 한 장 써주세요.

선생님은 아침부터 아침부터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소견서를 쓰면서 웃으셨다.
나처럼 진단서나 의사소견서 한 장 받으려고 의외로 많은 환자들이 다시 방문을 한다고 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선생님과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누고 난 후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진료실을 나오니 간호사는 아직 병원 도장이 찍히지 않은 의사소견서 확인용 원본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개인 정보를 모두 확인 후 수납 카운터에서 제출하면 최종본을 발급해 준다고 했다.

나는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수납창고에서 확인용을 최종본으로 발급받았다.
아래 사진은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에서 발급하는 의사소견서 양식이다.
(다른 병원의 경우 문서 양식이 다를 수는 있으나 내용은 같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의사소견서 양식

의사소견서 내용에는 공통적으로 '치료를 마쳤고, 현재 직장 생활과 일상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라는 문장과 함께 주치의의 서명, 병원 도장 등 이 3종 세트가 A4 종이 한 장에 다 들어 있어야 한다.
한 번 발급받은 의사소견서는 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에서도 본인인증을 거친 후에 재발급이 가능하다.

이렇게 나는 의사소견서를 2장을 출력하여 받는 것으로 이날 오전 10시 10분에 해야 할 일이 다 끝났다.

# 의사소견서 발급을 위한 진료 비용

사실 이 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자동수납 기기에서 진료비를 계산했을 때 108,100원이 나왔었다.
아무 검사도 안 하고 의사소견서 하나 부탁하는데 너무 비싸서 나중에 수납창구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의사소견서를 위해 방문해서 진료받았는데 비용이 좀 많이 나온 거 같아서요.
다시 한번만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수납창구 직원이 영수증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자동수납 기기는 검사 1회 + 주치의 진료 1회를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어서 내년 검사비용까지 청구가 됐다고 했다.
직원은 108,100원을 취소하고 이 날 의사 면담 비용인 31,700원만 다시 결제를 했다.
그리고 짜증이 올라와서 씩씩거리던 나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다시 얌전해졌다.
애초에 저번 진료 때 의사소견서를 함께 요구했다면 이 비용도 따로 들지 않았을 테지만 어차피 지나간 일이고...
다음부터는 진료받을 때 뭐 물어보고 요구할 건지 싹 다 메모해서 아예 주치의 선생님께 보여줘야겠다.


결론...
진료받으러 갈 때 실비보험 서류, 의사소견서, 영수증은 꼭 챙기자...
특히 먹고살려면 의사소견서 밑줄 쫙, 별표 5개....

그리고... 진료비 내역이 의심되면 무조건 수납 카운터 직원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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